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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6.

    내 빛깔대로 사는 법 과정이 있는 결과

  • 005. 김창열

  • 004.

    “…그의 삶은 천천히 자살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인스타 둘러보기에 언젠가 뜬 피드에 있던 말이었다. 쳇 베이커의 본 투 비 블루를 들으며 느낀 말이었던 것 같은데…나는 이게 예술가의 불행과 우울에 대한 관객들의 판타지가 아닌가 싶다.  너도 속고 나도 속고우울증 포르노 멜랑콜리 하지 않으면 예술적이지 않다고들 생각하는건지 나도 마찬가지인가 싶기도 하고 삶이 고단하니 마음이 다들 그리로 향하는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 003.

    수녀는 순진한 얼굴로 꽹가리를 친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맑게 웃으며 춤을 춘다 다 낡은 포대에 꾹꾹 눌러쓴 희망에 가득찬 순진함은 수녀복과 수사복이 변호한다  지나가는 이들 마음이 동하진 않아도고개 한 번은 끄덕일 법 하다 그 영약한 순진함이 추해보이는 것은내가 추하기 때문일까

  • 002.

    나의 작업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을 객관적으로 살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서기 전에는 내 작업은 작품이라 불릴 수 없을 것

  • 001.

    평화의 집은 기본적으로 작업실이 되어야 한다. 거트루드 슈타인의 살롱처럼,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사람들이 편하게 모이길 바란다.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미명하에 술집, 카페, 공연장, 전시장 등으로만 남아버리는 공간이 너무 많다. 평화의 집은 그런 공간이 되지 않아야 한다. 순수한 고유성을 발견하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평화의 집에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그 꿈을 펼칠 수 있길 바란다.

  • 000. maison de la paix

    «Maison de la Paix»는 제네바 유학 시절 지내던 기숙사 바로 앞 트램 정류장의 이름이었다. 그 기숙사에 1년 남짓 살면서 여러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게 유학 생활 중 가장 큰 낙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 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평화의 집’이라 명명했다. 이 공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 블로그를 쓴다. 그리 멀지…